조회 1,644 조회 날짜 17-01-30 01:38 전체공개   잡담 지나가던 이야기4
  • 무뇨스박사

    출석일 : 2

"비온 뒤 땅 굳는다(雨降って地固まる。)라는 말, 한국에도 있죠?"

코바야시(小林)상이 맥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을 꺼냈다.

"하아? 뭐...그런 말 있긴 있죠. 역경을 겪고 더 강해진다는 말이잖아요?"

삶은 풋콩(枝豆)을 까먹다가 얼결에 대답했다. 분명 얼빠진 표정이였음에 틀림없다. 그도 그럴게 내 표정을 보고 그녀가 폭소했기 때문이다.

무슨 의미로 한 질문일까 라고 쭉 생각했지만 감 잡히는 부분이 없었고, 그녀도 이후론 평범히 상사의 뒷담화를 시작했기에 나도 이내 생각하는걸 그만두었다.

생맥주 한잔씩 마시고 선술집(居酒屋)을 나오니 비가 그쳐있었다.

"아, 비 그쳤네요!"

코바야시상이 나를 보며 생글생글 웃었다.

"그러게요. 슬슬 돌아갈까요?"

나도 마주 웃어보이자, 그녀가 손목을 내 눈 앞으로 들어보였다. 정확히는 손목에 찬 시계를 봐달라는 뜻이겠지만

" 아, 가녀린 여성 혼자서 이런 겨울밤 늦게 집까지 걸어가도 괜찮을까요??"

지금 시각은 저녁 아홉시, 도심지였다면 꽤나 이른 시간일수도 있겠지만 여긴 꽤나 시골인 편이라 인적이 드물긴 하다.

"근처까지 데려다 드릴게요."

자전거의 자물쇠를 풀고 그녀에게 웃어보이자, 기다렸다는듯이 옆으로 걸어왔다.

"준상은 좋은 사람이네요."

"고맙습니다."

과장되게 고개를 푹 숙이며 예를 표하자 그녀는 크게 웃었다.

조용한 시골길을 걸으며 선술집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 와중에 그녀가 아까와 같이 갑작스럽게 물어왔다.

"그래도 잘 생각 해보면 이상하지 않아요?"

"그쵸, 자연 모발 치고는 광택이 너무 강하죠?"

테라무라과장의 머리가 가발인지 아닌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에,  웃으며 대답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과장님의 머리가 가발인건 당연한거구요."
그녀의 희미한 웃음
"비온 뒤 땅 굳는다는 말 말이에요."

일순 그녀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없어졌기에 나도 얼굴에서 웃음기가 빠지기 시작했다.

"너무 진지한 표정 짓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어느샌가 그녀는 다시금 싱글벙글한 얼굴로 돌아왔다.

무슨 대답을 하면 될지 몰라 당황하는 날 보다가 싱글벙글 웃던 그녀가 내 팔을 잡더니 나머지 손으로 지금까지 걸어온 등 뒤의 길을 가리켰다.

"저길 보세요. 지금까지 저희들이 걸어온 땅바닥말이에요."

뒤돌아보니 그녀와 내 발자국, 자전거의 바퀴자국으로 엉망진창이 되어있었다.

"비온 뒤 땅 굳는다는말이 역경을 겪고 더 강해진다는 뜻이죠?"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저렇게 엉망이 된채로 굳어서 강해지는게 과연 좋은 일일까요?"

그녀의 말에 일순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비온 뒤 땅 굳는다고 하지만, 발자국이 남지 않은채로 굳는게 더 중요한게 아닐까요?"

그녀가 팔을 놓아주었다.

"모리(森)상, 분명히 발자국으로 엉망진창일거에요. "

코바야시상은 활짝 웃어보였다.

"뭐해요, 좋은남자! 땅바닥 굳기 전에 발자국 지우러 안가고?"

그녀가 등을 떠밀었다.

"이제 금방 집이니까 걱정말고 가세요!"

손을 흔드는 그녀와 지나온 길을 번갈아서 보다가 자전거에 올랐다.

"지금 모리상한테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도 아닌 준상일거에요."

말을 마치고 그녀는 힘껏 자전거를 밀어주었다.

'파이팅!' 하고 외치는 그녀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따라 패달을 밟았다.



아아아아아ㅏ아아

글쓰기 재밌다...

근데 막상 이야기를 이어서 써보려고 하면 어떻게 써도 어색하네

역시 취미로 남겨둘 수 밖에 없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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