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3,144 조회 날짜 16-09-30 18:59 전체공개   잡담 전쟁 빼곤 다 잘한다는 이딸리아 군.
  • 폐허

    출석일 : 1166

이탈리아군 전사戰史



기원 전 510년

시바리스라는 도시 국가에서 승리 축하 퍼레이드를 위해
군의 기마대에 소속된 말들을 음악에 맞춰 춤을 추도록 교육했다.
헌데 국가의 운명을 건 결전에서 상대편에서 음악을 연주하자
기마대의 말들이 전원 대혼란.

결국 대패




1866년 6월

20만의 이탈리아군은 알프레히트 대공이 이끌던 오스트리아군 7만 5천에게 대패




1866년 7월

국가 통일 전쟁으로 오스트리아에게서 베네치아를 손에 넣으려 벌였던 리사 해전
리사섬을 공격하기 위해 이탈리아 함대가 취한 행동은 아래와 같다.

첫번째 출항, 바다위에서 장황한 연설을 하는 것으로 끝
두번째 출항으로 리사섬을 한바퀴 쭈욱 돌아보는 유람으로 끝
세번째 출항 때는 마지못해 일단 싸우긴 했다.

오스트리아 측은 배 한대도 잃지 않은 반면, 이탈리아 군은 배 3척을 잃음




1895년

에티오피아에서 기관총으로 무장한 이탈리아군이 원주민에게 대패
그 전에 이미 한번 더 진 적이 있기 때문에 연속 2연패
6000여명의 사상자를 낸 대패였다.




1896년

다시금 에티오피아와 싸움.

에티오피아군 1000여명의 사상자 발생
이탈리아군 5000여명 사상자 발생





1917년 10~11월

독일, 오스트리아 연합군에게 대패
독일 오스트리아 연합군 사상자 2만 3천
이탈리아군 사망 1만, 부상자 2만, 포로 29만 3천, 탈주병 30만.




1918년 10~11월

오스트리아군과 휴전 교섭을 맺은 상태에서 상대를 공격, 포로 30만명 획득
 



1922년

에티오피아 재차 침략 
비행기, 전차 같은 신무기를 초기부터 배치하며 밀어붙였지만, 엄청나게 빨리 패배.
에티오피아군은 구식 전장식 총기가 주류였던데다, 심지어 창으로 무장한 병사도 있었다.




1937년 3월

이탈리아 4개 보병 사단, 진군 도중 투항자가 속출.
싸우지도 않고 패주




1940년 6월  

이탈리아가 영국, 프랑스를 상대로 선전 포고.
이는 히틀러를 질투한 무솔리니의 독단적 행동이었으로, 아무런 계획도 없었음.
덕분에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이탈리아 선박은 전쟁 개시 며칠 안에 전부 나포됐다.
선전 포고 이후에도 따로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10일 동안 아무 일도 안했다.
이후 기습으로 전쟁을 시작, 헌데 고작 2개 사단에 막혀서 후퇴




1940년 6월  

독일군에게 당해 항복 직전이던 프랑스에 침공을 감행
프랑스군에게 반격당해서, 만일 프랑스의 항복 선언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되려 이탈리아 영토가 침범당할 뻔 했다.




1940년 10월 
 
이탈리아군 21개 사단의 그리스 침공,
그리스군 13개 사단에게 반격 당해서, 이탈리아 군은 와해 직전 상태로 알바니아로 패주
그리스는 친독일적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 일로 연합군 측으로 돌아선다.




1940년 12월 

이집트에 침공한 이탈리아군 7개 사단,
영국군 2개 사단의 반격을 받고 13만명이 포로가 된다.




1940년 10월   

영국 해군의 구식 복엽기 소드 피쉬 21기가 항구 도시 타란토에 있던  이탈리아 함대를 공격.
전함 1대 대파, 2대 중파.
영국측 손해는 소드 피쉬 2기 격추.




1942년 

이탈리아군 25만과 영국군 3만 5천이 전투, 튀니지에서 항복.




1942년 12월   

이탈리아 8군이 소련군의 공격을 받고 모든 병기를 내버리고 도주.








이하 잉여 전설


북부아프리카에서, 영국군 장교한테 총을 든 이탈리아 병사 무리가 항복하려고 다가갔다.
헌데 전리품 찾는다고 바쁜 그 영국군 장교가 자신들을 무시하기에
이탈리아 병사들은 그의 옆에 총을 내던졌더니 영국군 장교가
[시끄러!! 저리로 꺼져!!]
이렇게 소리치기에 별 수 없이 항복을 받아줄 다른 영국군을 찾아서 사라졌다고.





2차 세계 대전 당시 포로로 획득한 이탈리아 병사는 절대 고문을 하지 않았다.
알아서 자기가 알고 있는 걸 전부 말해 주니까.





케냐산은 아프리카에서 두번째로 높은 산으로
2차 세계 대전 도중 이탈리아 병사 세명이 정상 (4985 m)에 도전해서 첫등정에 성공했다.
그들은 영국군에게 잡혀 있던 포로들로
포로 수용소에서 매일 그 산을 보는 중, 한번 올라보고 싶었기 때문에
산을 오르는 루트를 검토하면서 반년 동안 식료품을 모으고 등산 도구를 만들었다,
그리고 수용소에서 탈주, 80Km 거리를 걸어 마침내 등정 성공을 이뤄냈다.
이후 이들은 수용소로 당당하게 복귀했다.
영국군은 이들의 기행이 너무 기가 막혀서 단지 몇주 동안의 독방형만을 내렸다고.





어느 날 한 이탈리아 병사가 잠을 자던 중, 인기척이 느껴져 깨니
소대장이 어딘가 가는 게 보였다. 병사는 그에게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그러자 소대장이 답했다.
「나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 생각 없어! 노예가 아니니까!」
짐을 챙긴 소대장은 멋진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내가 목숨을 걸 때는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다!」
이런 말을 하면서 탈영하려는데, 앞서 병사가 소리쳤다.
「대장! 기다려 주세요!」
뒤돌아 본 대장에게 병사가 소리쳤다.
「나도 같이 갑니다!」

이후 하루 하루가 지날 때마다 병사들의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영국군과 전투가 시작되기 전, 이미 그 소대 자체가 사라진 상태였다.





나폴리에서 군함을 도둑 맞았다.





전쟁을 안할 때의 이탈리아군은 매우 강하다





북부아프리카에서, 독일군이 영국군 패잔병을 찾으려 이리 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헌데 영국군은 원주민 부락에 숨어 있었기 때문에 독일군은 이들을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이에 이탈리아군은 현지 원주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영국병 한명당 설탕 5봉지에 밀가루 5봉지」
다음날, 영국군 전원을 잡을 수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 독일, 일본, 이탈리아군 포로를 모아둔 수용소가 있었다.
독일인은 집단으로 구멍을 파서 탈주를 시도했다.
일본인은 집단으로 자결해버렸다.
이탈리아인은 수용소 문을 열어놔도 될 정도로 조용했다.
그리고 근처 민간인 여자를 꼬셔서 가정을 만든 사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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