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3,061 조회 날짜 16-07-13 22:53 전체공개   박제 소설) 이백살을 맞은 사나이 20~23. (끝)
  • EBS세미

    출석일 : 1

  • 세미와 시유를 올리지 않는것은 올릴게 없어서..

20.

  리싱 위원장은 앤드류가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신 더 늙어  보였다. 
지금은 투명한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 머리는 짧게 잘랐고 입은 옷은 
품이 넉넉했다. 앤드류 자신은 거의 백 년 전 처음 옷을 입기  시작했
을 때의 모양과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그러면서도 지금  사
람들이 봐도 최소한 흉을 보지는 않을 그런 정도의 고루한 옷들을  걸
치고 있었다. 
  리싱이 말했다.
  "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은 다 했어요, 앤드류. 쉽게 좌절할  수는 
없겠지만, 결국 우리는 패배하고 말 겁니다. 이 모든 것들을 포기해야 
할 거예요. 나도 할 수 있는데까지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다음 번 
선거에서 표만 잃어버릴 결과가 되었어요."
  " 나도 압니다. 그 때문에 나도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당신
은 만약 일이 그렇게 되면 나를 포기한다고 하고선 왜 계속 내 입장을 
지지하신 거죠 ? "
  " 아시다시피 사람은 누구나 마음이 변하는 법이지요. 당신을  포기
한다는 것이 내게는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예요.  어쨌거나 
내가 [세계 의회]에서 일해 온 지도 이십오년이나 되었으니  더  이상 
여한도 없고."
  " 사람들의 마음을 바꿀 방법이 달리 없을까요, 리싱 ? "
  " 우리는 몇몇 순박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태도를 바꾸는 데 성공
했지요. 그러나 나머지 대다수는 로봇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이나 공포
를 없애버리지 않는 한 어쩔 수가 없어요."
  " 그런 반감이나 공포가 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지는 데 타당한  이유
가 됩니까 ? "
  " 타당한 이유는 아니지요, 앤드류. 그렇지만 별다른 기준이 없다면 
결국 그런 것들이 결정적인 작용을 할 수 밖에 없어요."
  앤드류는 또박또박 힘을 주어 말했다.
  " 결국 모든 문제는 두뇌로 귀결되는군요. 그러나 이  문제가  과연 
유기질 뇌세포냐 양자회로 두뇌냐의 차원에서만 다루어져야 합니까  ? 
실질적으로 어떻게 기능하느냐 하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는 없습니까 ? 
그저 단순히 두뇌가 어떻게, 무엇으로 만들어졌느냐 하는 문제에만 집
착해야 되는 겁니까 ? 두뇌란 어느 일정 수준 이상의 사고작용이 가능
한 모든 것의 총칭으로 간주할 수도 있지 않아요 ? "
  " 그런 논리는 통하지 않을 겁니다. 당신의 두뇌는 인간이 만들었지
만, 인간의 두뇌는 그렇지 않아요. 당신의 두뇌는  조립된  것이지만, 
인간의 두뇌는 진화한 것입니다. 인간과 로봇 사이의 구별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사실들이 도저히 깰 수 없는 거대한 벽과 마찬가지
예요."
  " 만약 그런 뿌리깊은 반감과 공포의 근원을 알 수만 있다면,  정확
한 근본 원인을 알 수만 있다면 --"
  " 당신은 그 기나긴 투쟁에도 불구하고,"
  리싱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 여전히 인간들을 이성으로 설득하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는군요. 
불쌍한 앤드류, 화내지 마세요. 계속 인간이 되라고 끈질기게  이끌어 
가는 것이야말로 당신이 로봇이기 때문이예요."
  " 난 모르겠군요."
  앤드류는 변함없는 태도로 말했다.
  " 만약 내가 내 스스로 --"

  만약 그가 그 스스로 --
  그는 오래전부터 결국은 그것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마침내 그는 의사를 찾아나선 것이다. 그는 그 일에 적합한 솜씨를 갖
춘 의사를 주변에서 은밀하게 찾아냈다. 일에 적합하다는  말은  다시 
말해서 로봇 의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술 솜씨도 솜씨거니
와, 무엇보다도 인간의사는 심중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로봇의사는 사람에게는 그런 수술을 할 수가 없기때문에,  앤드류는 
마침내 사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가 로봇이라고 밝히
기 전에 로봇의사에게 던진 몇 가지 질문들은, 그 자신으로 하여금 지
난 날들의 갖가지 소동과 혼란들을 다시 떠오르게 하였다. 제 1법칙에 
따라 수술할 수 없다는 의사에게 앤드류는 말했다.
  " 나 역시 로봇이오."
  앤드류는 그리고나서 그동안 인간들에게 배웠던 권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 이 수술을 나에게 시행할 것을 '명령'하오."
  제 1법칙에 구애받지 않게 된 의사는, 너무나도 인간과 흡사한 외모
를 하고있는 앤드류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고 충실하게  제  2법칙에 
따랐다. 그리하여 수술은 진행되었다.



  21.

  어쩐지 머리가 둔해진 느낌은 순전히 환상에  불과하다고  앤드류는 
확신했다. 그는 그러나 수술에서 회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조심
스럽게 몸을 가누느라 벽에 기대어야만 했다. 그냥 주저앉아 버린다면 
모든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말 것이다.
  리싱은 말했다.
  " 이번 주 안에 최종 표결이 있습니다, 앤드류. 나도 이제 더  이상
은 늦출 수가 없어요. 그리고 우린 결국 지고 말겠지요....결국  그렇
게 끝나고 말아요, 앤드류."
  " 당신이 표결을 최대한 늦춰준 걸 무척 고맙게  생각합니다.  나는 
필요한 만큼의 시간을 얻었고, 이제 미련없이 도박을 할 수 있게 되었
어요."
  " 도박이라니, 무슨 얘기지요, 앤드류 ? "
  리싱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 당신에겐 말할 수 없었지요. [페인골드 앤드 마틴]  법률사무소에
도. 나는 이제 종말을 맞게 됩니다. 보세요, 두뇌가 그렇게 중요한 기
준이라면, 결국 시간적으로 유한하냐 무한하냐가 제일 큰 차이 아니겠
어요 ? 두뇌가 어떻게 생겼는지, 또 과연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해서 누가 그렇게 상관하려 들겠어요 ? 인간의 두뇌를 이루고  있는 
유기세포는 언젠가는 죽습니다. 반드시 죽습니다. 그 밖의 다른  모든 
인체 기관들은 인공장기로 바꾸거나 남의 것을 이식하거나 해서  유지
할 수 있지만, 뇌세포만은 절대로 교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걸  바
꾼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개인의 개성을 없앤다는 말이니까, 결국  살
인이 되는 겁니다. 따라서 인간들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모두 죽을 
수밖에 없지요. 
  나의 양자두뇌는 거의 2세기 가까이 작동해왔지만,  그동안  별다른 
변화도 없었고 앞으로도 몇 세기 동안 별 탈없이 지탱할 겁니다. 바로 
이 점이 가장 근본적인 차이 아닙니까 ? 인간은 로봇이  불사신  같은 
삶을 누리더라도 별로 상관하지 않습니다. 기계나 마찬가지니까요. 그
러나 불사신과 같은 삶을 누리는 인간은 결코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겁
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유한한 수명을 갖고 태어나는 것이 
일반적인 진리니까요.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나를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겁니다."
  " 그래서, 당신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지요, 앤드류 ? "
  " 나는 그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십여년 전에 나의 양자두뇌는 인공
적인 유기질 신경 조직과 연결되었지요. 나는 얼마 전에 한 가지 수술
을 더 받았습니다. 지금 내 두뇌회로에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누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리싱의 주름진 얼굴은 한동안 아무런 반응도 나타내지 않았다. 그녀
의 입술이 뻣뻣해졌다.
  " 당신은 죽기로 작정했단 말인가요, 앤드류 ? 안 돼요. 그건 세 번
째 법칙을 어기는 것이예요."
  " 아닙니다. 나는 선택을 한 겁니다. 내 육신을  죽이느냐,  아니면 
내 포부와 욕망을 죽이느냐 하는 문제지요. 내 육신은 살아있을지언정 
그보다 더한 것을 죽이는 선택을 한다면, 나에겐 그것이 세 번째 법칙
을 위반하는 일입니다."
  리싱은 앤드류를 쥐고 흔드려는 듯 그의 두 팔을 잡았다. 그녀가 갑
자기 동작을 멈추었다.
  " 앤드류, 그래도 소용없어요. 다시 이전대로 회복시키세요."
  " 불가능합니다. 이미 너무 많은 손상을 입었어요. 나는 이제 일 년 
남짓 살 수 있을 겁니다. 아마 그보다 약간 오래, 아니면 좀 더  일찍 
죽을지도 모르지요. 아무튼 내가 탄생한 이백주년이 되는 날까지는 버
텨 볼 겁니다. 가까스로나마 그 때까지는 갈 수 있습니다."
  " 그래서 얻는게 도대체 뭐지요, 앤드류 ? 당신은 바보군요 ! "
  " 내가 인간으로 인정받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만약 인정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 고통스런 투쟁은 끝나는 것이니까 역시 그만한 가
치가 있습니다."
  다음순간 리싱은 스스로도 놀랄 반응을 보였다. 그의 두 눈에서  천
천히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22.

  앤드류의 마지막 행위가 세상에 일으킨 파장은 예상보다 훨씬  격렬
했다. 그동안 앤드류가 했던 어떤 일들도 이처럼 모두들의 마음을  뒤
흔들어 놓은 적이 없었다. 그는 인간이 되기위해서  마침내  죽음까지 
선택했다. 사람들이 지나쳐버리기에는 너무나 위대하고 안타까운 희생
이었다. 
  마지막 의식의 날이 다가왔다. 이백 주년 기념행사는 아주 성대하게 
준비되었다. [세계 의회] 의장이 기념행사에서 법안을 통과시키고  선
포하는 광경은 전 세계는 물론, 달과 화성 식민지에까지 중계방송되었
다.
  앤드류는 바퀴의자에 앉아있었다. 아직 걸을 수는 있었지만  비틀거
리는 불안한 동작밖에는 할 수 없었다. 
  전 인류가 지켜보는 가운데 의장이 소리높여 선언했다.
  " 오십년 전에 우리는 앤드류가 백오십살 먹은 로봇이라고 축하했습
니다."
  잠시 후, 의장은 좀 더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외쳤다. 
  " 오늘 우리는 당신이 이백살 생일을 맞은  '사람'이라고  선언합니
다, 마틴 씨 ! "
  앤드류는 지그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 의장과 악수를 나누었다.



  23.

  침대에 누워있던 앤드류는 점점 의식이 희미해짐을 느꼈다.
  그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 의식의 파편들을 붙잡았다. 인간이다  ! 
나는 인간이다 ! 자신의 마지막 생각은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그  생
각과 함께 영원히 어우러지며 자신의 존재를 끝맺고 싶었다. 인간처럼 
'숨을 거두고' 싶었다. 
  가냘프게 눈꺼풀을 다시 들어올렸다. 마지막으로 옆자리를 지키고있
는 리싱의 경건한 모습을 가슴에 아로새겼다. 그 뒤에 다른  사람들도 
여럿이 있었지만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 없는 그림자일 뿐이었다.  눈 
앞이 점점 어두워졌는데 이상하게도 리싱의 모습만은 또렷하게 떠올랐
다. 천천히, 아주 조금씩 손을 들어올렸다. 내민 손을 그녀가 꼬옥 쥐
는 느낌이 전해져왔다. 희미하게, 아주 어슴푸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리싱의 모습이 아련하게 희미해졌다. 그와함께 의식도 마침내  영원
한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정지해버리기 직전에 언뜻 무엇인가가 뇌리를  스
쳤고, 아주 잠시동안이지만 앤드류는 마음의 평화를 느꼈다.
  " 작은 아씨."
  그가 속삭이듯 중얼거린 소리는 너무나 가냘퍼서 아무도 들은  사람
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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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7년 휴고상 중편부문, 1976년 네뷸러상 중편부문 수상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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