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3,196 조회 날짜 16-07-13 22:51 전체공개   박제 소설) 이백살을 맞은 사나이 15~19
  • EBS세미

    출석일 : 1

  • 세미와 시유를 올리지 않는것은 올릴게 없어서..

15.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앤드류에겐 시간이 많았다. 그는 폴이  평
화롭게 숨을 거둘 때까지는 그저 기다리기로 했다.
  주인의 증손자가 마침내 사망하고 나자 앤드류는 험난한 바깥  세상
에 혼자 내던져진 꼴이 되었고, 그래서 그는 자신이 진작에  결심했던 
일을 더욱 더 서둘렀다.
  사실 완전히 혼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사람은 죽고 없어졌지만 [페
인골드 앤드 마틴] 법률사무소는 여전히 남아있었고, 그런 법인은  로
봇보다도 더 오래 살아 남을 것이다. 법률사무소는 전통적으로 내려오
는 경영방침을 별 무리없이 계속 고수하고 있었다. 앤드류 명의의  신
탁 재산은 사무소에서 잘 관리해주는 덕에 점점 불어났다. 대신  법률
사무소도 매년 막대한 수수료를 꼬박꼬박 챙겼다. 그들은 이제 앤드류
가 고안한 새로운 산화캡슐 건을 법적으로 지원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마침내 앤드류가 [합중국 로봇 및 기계인간]회사를  방문하는  날이 
왔다. 그는 혼자 갔다. 그 옛날 처음 갈 때는 주인과 함께, 그 다음엔 
폴과 갔었지만 이번에는 혼자였다. 그의 모습은 겉보기에 사람과 다른 
점이 거의 없었다.
  회사도 많이 변화하였다. 공장이 있던 곳은 거대한 우주정거장이 되
었다. 비슷한 분야의 산업이 발달하면서 완전히 탈바꿈한 것이다.  그
와 함께 많은 수의 로봇들도 사라져버렸다.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공
원처럼 변해버렸고, 인구는 1조 명에서 균형을 이루었다. 그리고 독립
된 양자두뇌를 가진 로봇들도 전체 인구의 3할 정도 되는  수가  있었
다. 
  연구소 소장 앨빈 매제스쿠는 얼굴도 머리색깔도 거무튀튀했다.  뻣
뻣한 턱수염에다 허리 위에는 아무런 옷도 입지 않았고, 단지  가슴띠
만 둘렀다. 한창 유행하는 형식이었다. 앤드류 자신은 몇 십년은 되었
을 구닥다리 모양의 옷을 입고 있었다.
  매제스쿠가 말했다.
  " 물론 당신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직접 만나서 나도 반갑습니다. 어
쨌거나 당신은 우리 회사에서 만든 로봇 중에서 제일  유명한  것이니
까. 지난날 스미스-로버트슨 사장님이 당신을 섭섭하게 해 드린 건 유
감입니다. 좀 더 기분좋게 배려해 드릴 수도 있었을 텐데."
  " 지금도 그래주면 좋겠군요."
  " 아니, 이젠 안 될 겁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어요. 우리는 지
구에서 백 년 가까이 로봇을 다루기는 했지만 모든 것이 너무 많이 변
했습니다. 로봇은 우주에서 일하기에 더 적합합니다. 지금 지구에  있
는 것들은 양자두뇌가 없는 게 태반입니다."
  " 그렇지만 내가 남아있지 않습니까 ? 이 지구에 말입니다."
  " 그건 그렇지요. 그러나 당신같은 로봇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
다. 그런데 무슨 요구를 하려고 왔는지 ? "
  " 로봇으로서야 더 바랄 것이 없지요. 그러나 내 몸이 유기질  조직
인 만큼, 에너지도 유기물에서 얻고 싶군요. 여기 제 생각을 정리해서 
-- "
  매제스쿠는 서둘지 않았다. 처음에는 심드렁하게 있다가 점점  정색
을 하며 진지하게 앤드류가 내민 자료에 몰두했다. 그가 마침내  얘기
했다.
  " 이건 굉장한 것이군요. 이걸 누가 다 고안했습니까 ? "
  " 내가 했습니다."
  매제스쿠는 한동안 앤드류를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 이 일은 당신 신체에 심각한 손상을 초래할지도 모릅니다. 아직은 
실험에 불과한 단계니까. 지금까지 이런 것은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
습니다. 하지 않는 게 좋아요. 그냥 지금 그대로의 당신이 더  좋습니
다."
  앤드류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좀 애매했지만, 목소리엔  노골적으
로 조바심이 깔려 있었다.
  " 매제스쿠 박사님,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군요. 당신은 제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이런 장치들을 제  몸에  정상적으로 
설치할 수 있다면, 인간의 몸에도 설치할 수 있습니다.  인공  장기들 
따위를 이용해서 사람의 수명을 연장하려는 노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여기 제가 설계한 것들, 또 지금 설계하고 있는 것들보다 
더 좋은 건 없습니다.
  이것들이 실용화되면 나는 그 특허권 관리를 [페인골드 앤드  마틴] 
법률사무소에 일임할 겁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사업화하는데  필요한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고, 만약 실제로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 로봇  산
업은 커다란 타격을 입을 겁니다. 물론 당신 회사의 피해가 제일 크겠
지요.
  그러나 제 제의를 수락해서 내게 이 장치를 시술하고 앞으로도 비슷
한 일을 해 준다면, 특허권 수수료에서 계속 배당금을 얻게  될  겁니
다. 그리고 로봇은 물론 인간의 인공장기들에 대한 기술과 지식도  습
득하게 될 겁니다. 미리 얘기하지만 이 일은 완벽해야 합니다. 첫번째 
시술을 마치고 여러가지 시험을 거쳐 모든 것이 정말로 완벽하게 끝났
다는 것이 입증된 뒤에만 방금 얘기한 여러가지 것들이 보장되는 겁니
다."
  앤드류는 자신의 단호한 태도가 로봇의 첫번째  법칙과  상충된다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았다. 지금은 얘기를 듣고 있는 인간이  괴로울지
도 모르지만 결국은 인간을 위한 일이니까.
  매제스쿠는 넋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 난 이런 문제를 혼자 결정할 위치에 있지 않소. 이사회에서  결정
을 내리려면 시간이 필요하오."
  " 적당한 만큼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당한 만큼만입니다."
  앤드류는 만족스럽게 생각했다. 폴이 같이 왔더라도 이보다 더 멋지
게 해내지는 못했으리라.



  16.

  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 결정이 내려졌고, 그리고 수술은 성공적으
로 끝났다.
  매제스쿠는 말했다.
  " 난 이번 수술에 반대했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둡니다, 앤드류.  그
러나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이유가 아니오. 시술 자체에는 아무런  이
의가 없어요. 단지 당신이 아니라 누군가 다른 로봇을 대상으로  하고 
싶었소. 당신만이 가진 그 독특한 양자두뇌에 손상을 입히고 싶지  않
았단 말이오. 이제 당신의 양자두뇌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신경조직
들과 결합되었으니, 만약 몸에 무슨 이상이 생기거나 하면 그  양자두
뇌도 원래대로 회복시키기가 어렵게 될 거요."
  " 나는 합중국 로봇 회사의 기술진 여러분들 솜씨를 믿습니다."
  앤드류는 말을 이었다.
  " 나는 이제 음식물을 먹을 수 있습니다."
  " 에에, 하여튼 올리브 기름도 주기적으로 마셔야 할 거요.  산화캡
슐을 계속 청소해 줘야 하니까. 지난 번에도 설명했지요 ? 뭐  그다지 
맛이 좋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하시오."
  " 이 상태로 만족한다면 그렇게 해야 겠지요. 그러나 내부에서 스스
로 세척이 되도록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지금  저
는 고체 음식물도 처리할 수 있는 장치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런 음
식물 중에는 소화가 안 되는 부분도 있지요. 그런 것들은  몸  밖으로 
내보내는 겁니다."
  " 그러니까, 배설물을 말하는 건가요 ? "
  " 그것에 해당되는 물질이 되겠지요."
  " 뭐 또 다른 것은 ? "
  " 뭐든지 다 할겁니다."
  " 생식기까지도 ? "
  " 지금으로서는 그것도 장기적인 계획에 들어 있습니다. 내 몸은 하
나의 화폭이나 다름없고 나는 거기에다 그림을 그리는  겁니다.  내가 
그리는 것은 -- "
  매제스쿠는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지만,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자 스
스로 끝을 맺었다.
  " 인간입니까 ? "
  "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요."
  " 좀 빗나간 야망을 가졌군요, 앤드류. 당신은 인간보다 더  뛰어난 
존재요. 당신이 완전히 유기체로 탈바꿈해버린다면, 바로 그 순간  돌
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드는 것이오."
  " 내 두뇌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 아니, 아니오. 결국은 알게 될 겁니다. 아무튼 앤드류, 당신이 고
안한 인공 장기들은 아주 획기적인 것이오. 그 제품들의 특허권은  당
신 이름으로 시장에 선을 보이게 되겠군요. 발명가로서 공로를 인정받
게 될 거고, 바로 당신 자신의 몸으로 그 효능을  훌륭하게  입증하는 
셈이지. 그렇다면 당신 스스로 또 다른 시도를 안 해 볼수가 없겠군."
  앤드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명예가 찾아왔다. 앤드류는 몇몇 이름있는 학회의 정식 회원이 되었
다. 그 중에는 그가 온 정열을 다 바쳐 새롭게 개척한 분야의  학문도 
있었다. 그가 언젠가 '로봇생리학'이라고 이름붙였던 그 학문은  이제 
'인공생리학'으로 자리잡았다.
  앤드류가 탄생한 지 백오십주년이 되는 날, 합중국  로봇  회사에서 
성대한 축하 만찬이 베풀어졌다. 앤드류는 그 자리에서  묘한  감회를 
느꼈지만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은퇴해서 노년을 한가롭게 보내고 있던 앨빈 매제스쿠도  참석했다. 
그는 아흔네살이었지만 간과 콩팥을 인공장기로 대체시켜서 아직도 건
강을 유지하고 있었다. 매제스쿠가 짤막하지만 감동적인 연설을  하고 
난 뒤에 축배를 높이 드는 순간 만찬은 절정에 달했다. 그는 외쳤다.
  " 백오십살된 로봇을 위하여 ! "
  앤드류는 얼굴 근육을 새로 손봐서 웬만한 표정은 사람과 거의 똑같
이 표현할 수 있었지만, 그는 만찬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무표정하고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그는 '백오십살 먹은 로봇'이라는 말이 마
음에 들지 않았다.



  17.

  앤드류가 지구를 떠난 것은 탁월한 인공생리학 지식 때문이었다. 앤
드류가 탄생 백오십주년을 보낸 뒤 십 수 년이 흐르는 동안, 달은  지
구 자체보다도 더 지구에 가까운 생할환경을 이루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중력만큼은 달의 지하에 있는 수많은 도시들에서 쾌적하게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달에 사는 사람들이 착용할 인공장기는 달의 중력에 맞게  모든것을 
처음부터 새로 설계해야 했다. 앤드류는 달에 오 년 동안 머물면서 인
공생리학자들과 함께 연구에 몰두하여 달의 중력에 맞는 인공장기들을 
개발해냈다. 이따금 작업을 쉴 때면 로봇들이 많이 사는 지역을  산책
하곤 했다. 마주치는 로봇들은 모두 사람에게 하듯  아첨하는  태도를 
보였다.
  앤드류는 다시 지구라는 단조롭고 조용한 세계로 돌아왔다. 그는 자
신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페인골드 앤드 마틴]  법률사무소
를 방문했다.
  사무소 소장 사이먼 드롱은 놀란 얼굴로 앤드류를 맞았다.
  " 아직 돌아오는 중으로 알고 있었는데요, 앤드류.(그는 거의  마틴 
씨라고 말할 뻔했다.) 다음 주 쯤에나 돌아올 것으로."
  " 참을 수가 없더군요."
  앤드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는 본론을  꺼내려고  조바심치며 
말했다.
  " 사이먼, 달에선 말이오, 나는 스무 명의 학자들로 이뤄진  연구팀
을 책임지고 이끌었소. 나는 그들에게 지시를 내렸고 그들 중  반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소. 달에 있는 로봇들은 자기도 나중에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두 나를 따랐소. 그렇다면 말이오, 말해 보시
오 사이먼, 나는 사람이 아닙니까 ? "
  드롱은 앤드류에게 조심스런 눈길을 보내며 말했다.
  " 친애하는 앤드류, 당신이 방금 말했다시피  당신은  사람에게서나 
로봇에게서나 하나의 인간으로 대접받고 있어요. 따라서 당신은  사실
상 인간이나 마찬가집니다."
  " '사실상 인간이나 마찬가지'인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나는 
그렇게 대접받는 것은 물론이고 법적으로도 완벽한 인간이 되고 싶소. 
나는 인간이라는 것을 법으로 인정받고 싶소."
  " 그건 좀 다른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어떤 편견 내지는  선입
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겠지요 ? 당신은 어느 모로  보나 
인간과 매우 흡사한 존재이지만, 그러나 인간은 아닙니다."
  " 왜 아니라는 겁니까 ? 나는 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고 신체 
내부의 기관도 같은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내 몸  속의  기관들 
중에는 인간의 몸에 들어간 인공장기와 아주 똑같은  것도  있습니다. 
나는 인간의 예술과 문학과 과학에 지대한 기여를 했습니다. 지금  생
존하는 사람중에서 나만큼 커다란 공헌을 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또 뭐가 부족하다는 겁니까 ? "
  " 나 개인적으로는 더 이상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세계 의회]에서 당신을 인간으로 규정하는냐 하는 거지요. 솔직히 말
해서 나는 그러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 내가 [세계 의회]의 누구한테 얘기를 하면 좋겠습니까 ? "
  " 과학기술 위원회의 의장에게 얘기하면 될 겁니다, 아마도."
  " 당신이 좀 주선해 주시겠습니까 ? "
  " 글세, 당신 정도라면 굳이 중개인을 거치지 않고 직접 만날 수 있
을 텐데. 당신의 지위와 명예라면 --"
  " 아니오. 당신이 주선하시오." ( 앤드류가 이처럼 노골적으로 인간
에게 명령을 내리는 경우는 처음이었지만, 사실 그는 달에서 이런  일
에 어느정도 익숙해졌다.)
  " [페인골드 앤드 마틴] 법류사무소가 나를 전폭적으로  지원한다는 
사실을 위원회 의장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겁니다."
  " 후, 그러면 -- "
  " 전폭적으로, 끝까지 지원하는 겁니다, 사이먼. 지난 백  칠십오년
동안 내가 이 사무소에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었는가는 새삼 언급하지 
않아도 잘 아시겠지요. 그동안 나는 이 사무소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
게 성실하게 봉사해 왔습니다. 이제는 그 빚을 돌려받자는 겁니다."
  드롱은 대답했다.
  "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보지요."



  18.

  과학기술 위원회의 의장은 동아시아 출신 여성이었다. 그녀의  이름
은 치 리싱이었는데, 입고 있는 옷이 죄다 투명해서 마치  플라스틱으
로 포장한 것 같이 보였다. 
  리싱이 말했다.
  " 인간과 똑같은 권리를 누리고자 하는 당신의 희망에 저도  동감을 
합니다. 우리 인간들의 역사에도 인간 스스로의 권리를 위해 투쟁했던 
일이 많았지요. 그런데 당신이 원하는 권리는 도대체 무엇이지요 ? "
  " 간단합니다. 그저 마음놓고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원합니다.  로
봇은 언제 어느 때든 분해되어 버릴 염려가 있지요."
  " 인간도 언제 어느 때 사형선고를 받을 지 알 수 없습니다."
  " 인간의 사형선고는 법에 의해서만 내려지고  집행되는  것이지요. 
나를 분해하는 데에는 재판이 필요없지 않습니까 ? 그저 인간이  내게 
명령만 내리면 그걸로 끝입니다. 게다가 -- 게다가 -- "
  앤드류는 자신이 얘기하고 있는 것들이 핑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애를 썼지만, 교묘하게 가장했던 인간의 표정이며  목소리로
서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나는  인간들의  여섯 
세대를 거쳐오는 동안 오로지 그것만을 원했습니다."
  리싱은 동정어린 눈빛으로 앤드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의회에서 당신은 인간이라고 선언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수도 있어
요. 설사 돌로 만든 석상이라도 의회에서 인간이라고 규정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면 하면 그 순간부터 인간이 되는 거예요. 그러나 의회에서 
실제로 그렇게 할지 안 할지는 모르지요. 그런  애매모호한  경우에는 
대개들 선례나 일반적인 여론에 따르게 되는데, 의원들이란 결국 전체 
인구의 여론을 대변하는 사람들이니까 순조롭게 풀릴  문제는  아니군
요. 사람들은 로봇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
  " 지금도 그렇습니까 ? "
  " 지금도 그래요. 당신이 인간으로서 자격을 충분히 획득했다는  사
실은 모두들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뭔가 좋지않은  선례를 
남길까봐 두려워하고 있어요."
  " 무슨 선례를 말하는 겁니까 ? 난 단 하나뿐인  자유  로봇입니다. 
나와 같은 로봇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거
구요. 합중국 로봇 회사에다 자문을 구해보셔도 좋습니다."
  "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지요. 앤드류,  아아, 
당신이 좋다면 마틴 씨라고 부르지요. 나 개인적으로는 당신을 인간이
라고 인정하는 데 조금도 이의가 없어요. 그러나 당신도 알게  되겠지
만 다른 의원들은 대개 일반인들의 편견이나 선입감에 많이  좌우됩니
다. 그게 부질없는 내용이라는걸 알면서도 그렇게들  한다구요.  마틴 
씨, 나는 당신의 처지를 동정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희망은 갖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사실 -- ."
  그녀는 뒤로 물러 앉았다.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 사실 이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부각이 되면, 의회 안에서든  밖에
서든 분명히 당신을 분해해 버리자는 얘기가 나오게 될 거예요. 이 복
잡하고 골치아픈 딜레마를 해결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니까. 정말 이 
일을 계속 끌고 나갈 작정이라면 반드시 그 점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만 합니다."
  " 내가 인공생리학에 기여한 그 모든 공로나  업적을 모두들 기억하
지 못한단 말입니까 ? 나 혼자서 일구어내다시피 했던 그  기술들을요 
? "
  " 참 무서운 일이긴 하지만, 그럴 수도 있는게 사람이예요.  그리고 
설사 기억한다해도 결과적으로는 당신에게 더 좋지않은  인상을  갖게 
해 줄겁니다. 그들은 말할 거예요. 당신이 그 방면에서 이룩한 업적들
은 모두 다 당신 자신을 위해서 한 거라고 말입니다. 죄다 인간을  로
봇과 비슷하게 만드려는 의도가 아니면 로봇을 인간과 비슷하게  만드
려는 꿍꿍이다, 뭐 이렇게들 말할게 뻔해요. 물론 두 가지 경우 다 인
간들이 보기엔 아주 좋지 않은 일이죠. 마틴 씨, 당신은 정치적인  구
설수에 휘말려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우리들은  흑색 
선전의 표적이 될 테고 우리 스스로 그 내용을 인정하든말든 그  거짓 
선전을 믿는 사람들은 생깁니다. 부디 현명한 판단을 내리세요."
  리싱은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몸집이 작아서 앤드류에 비하면 어린이
처럼 보였다. 
  앤드류가 말했다.
  " 만약 내가 인간성을 얻기 위해 투쟁하기로 결정한다면, 당신은 내 
편이 되어주시겠습니까 ? "
  리싱은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 아마 내가 할 수 있는 한은 ...그렇게 할 거예요. 그렇지만  만약 
어느 때든지 나의 입장이 내 정치적 입지를 위태롭게 한다고 판단된다
면, 당신을 저버릴 수도 있죠. 왜냐하면 이 문제는 나의 기본적인  정
치적 신념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니까요. 당신에게 솔직히  말씀드
리는 거예요."
  " 고맙습니다. 더 이상 당신께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나는 결과가 어
떻게 되든 끝까지 밀고 나갈 작정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기꺼이  응하
시는 한도 내에서 당신의 도움을 기대합니다."



  19.

  정면 승부를 걸지는 않았다. [페인골드 앤드 마틴] 법률사무소는 신
중하게 전략을 짰고 앤드류는 이제 그런 준비 작업이  신물이  난다고 
투덜거렸다. 사무소는 골치아픈 문제의 발생 소지를 최소한으로  줄이
기 위해 여론 공작에 착수했다.
  그들은 소송을 제기했다. 인공심장을 다는 사람들은 수술 즉시 비용
을 지불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을 삭제해 버리자고 건의안을 상정한  것
이다. 더해서 인공장기를 단 사람들일지라도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권
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무소는 노련하고 끈덕지게 소송을 이끌어나갔고,  판결이  내려질 
때마다 패소했지만 그들의 일관된 태도는 광범위한 공감을 불러일으켰
다. 마침내 [세계 대법원]에서도 그들의 주장을 진지하게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몇 년의 시간과 몇 백만 달러의 돈이 투자되었다.
  마침내 최종 판결이 내려졌다. 결국 그들은 패배하고 말았지만 드롱
은 법적 패배보다 더 의미있는 승리를 거두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 동
안의 노력이 앤드류를 위한 것이었음은 당연한 얘기다. 
  " 우린 두 가지를 해 냈습니다, 앤드류."
  드롱이 말했다.
  " 물론 둘 다 좋은 것이지요. 우선 첫째로, 인공장기나  아니면  그 
밖에 어떤 것이든 인공부분이 있는 신체를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보
통사람과 똑같은 권리를 누리지 말란 법은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간성'이란  개념을  조금이나마 
바꾸는 데 영향을 끼쳤다는 점입니다. 사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금이
라도 더 오래 살고 싶어하는 욕망을 갖기 마련이고, 그렇다면 인공 장
기들에 의존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으니까 말입니다."
  " 그렇다면 이제 [세계 의회]가 나를 인간으로 인정해 줄까요 ? "
  드롱은 그다지 편치않은 얼굴을 해 보였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솔직히 말해서 낙관적으로 보지  않습니
다. [세계 대법원]이 인간을 정의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것이 하나 있지요. 인간은 유기질 세포로 이루어진 두뇌를 갖고  있지
만 로봇은 백금-이리듐 회로로 만들어진 양자두뇌를 갖고 있지요.  그
리고 당신의 두뇌도 양자두뇌인 것입니다....
  아아, 앤드류.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세요. 우리는  아직  유기질 
세포로 이뤄진 두뇌를 만들 능력이 없습니다.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
도 대법원의 인정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이건 당신 능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 그렇다면 이제 우린 어떻게 해야 합니까 ? "
  " 물론 부딪쳐 봐야죠. 리싱 위원장이 우리편이 돼 줄 테고 또 다른 
의원들 중에도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을 테니까. 
[세계 의회]의 의장은 최종 판단을 내리기 전에 대다수의 의견을 존중
할 것이 틀림없어요." 
  " 대다수가 우리 편일까요 ? "
  " 아니오, 아직은 멀었다고 봐야죠. 그렇지만 그동안 우리가 해  온 
작업덕분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간성의 개념이 꽤 넓어졌으니까,  그
런 여론에 기대하는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
약 당신이 포기하지 않겠다면 한번 운에 맡기고 도박을 해 보는  겁니
다." 

  " 나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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