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3,244 조회 날짜 16-07-13 22:49 전체공개   박제 소설) 이백살을 맞은 사나이7~14
  • EBS세미

    출석일 : 1

  • 세미와 시유를 올리지 않는것은 올릴게 없어서..

7.

  자유의 값을 따질 수 없는 것은 법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판사들도 
금전적인 가치를 매길 수는 없지만, 그러나 로봇이 자유를 사들이기에
는 너무나 비싼 듯 했다.
  앤드류의 자유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대표해서 지방 검사가 한  말은 
간단했다.
  '[자유]라는 말을 로봇에게는 적용시킬 수 없다. 오직 인간만이  자
유로울 수 있다.'
  그는 이 말을 천천히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자신의 말이 옳다는 것
을 강조하듯 책상위에 놓인 손이 단어 하나하나를 말할  때마다  아래 
위로 흔들렸다.
  작은 아씨는 앤드류를 대신해서 발언권을 요청했다. 앤드류가 한 번
도 들어본 적이 없던 그녀의 성명이 불리워졌다.
  " 아만다 로라 마틴 체니는 발언석에 서도 좋소. "
  " 감사합니다, 판사님. 저는 변호사도 아니고 정확한  법률  용어도 
모르지만, 제가 드릴 말씀에서 적당하지 않은 용어는 무시하시고 단지 
말씀드리고자 하는 참 뜻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앤드류에게 자유란 과연 무슨 의미인가를 이해하도록 해 보세요. 보
기에 따라서는 그는 지금 자유로워요. 적어도 지난 20년 동안 우리 가
족들 중 그 누구도 앤드류가 자발적으로 하지 않을 일을 명령했던  적
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원한다면 어떤 명령이든 그에게 내릴 수 있어요.  아
무리 힘든 일이라도 엄하게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소
유하고 있는 기계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변함
없이 성실하게 봉사하면서 더구나 막대한 돈까지 우리에게 벌어다  주
었는데, 왜 우리가 그런 일방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건가요 ? 그가 
우리에게 빚을 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요.
  설사 우리가 앤드류를 그런 강제적인 노예 신세에서 벗어나도록  법
적인 조치를 취해 준다고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자발적으로 우리에게 
봉사하는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를 자유롭게 해 준다는건 단지  말
장난에 불과한 것이에요. 그러나 그것이 앤드류에게는 대단한  의미를 
갖는 겁니다. 그는 원하는 걸 모두 얻게 되지만 우리가 잃는 것은  아
무것도 없다구요."
  판사는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를 참고 있는듯이 보였다.
  "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체니 부인. 본 사건의 경우는 적용
할 수 있는 관련 법조항도, 그리고 판례도 없습니다. 그러나 오직  인
간만이 자유를 향유할 수 있다는 묵시적인 가정이 있지요. 상급  법원
에서 기각될 수도 있지만 나는 이 자리에서 새로운 법 조항을  만들수
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섣불리 우리의 묵시적인  가정에  반하는 
판결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로봇에게 말하겠습니다, 앤드류 ! "
  " 네, 판사님."
  앤드류는 법정에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고 판사는 그의 목소리가  사
람과 비슷한 음색을 가진 것에 저으기 놀란 모양이었다.
  " 너는 왜 자유로워지기를 원하지, 앤드류 ? 그것이 왜 너에게 중요
한 문제가 되는 것이지 ?"
  " 노예가 되고 싶으신 적이 있습니까, 판사님 ?"
  " 그러나 넌 노예가 아니야. 넌 아주 훌륭한 로봇이야. 내가 보아온 
것 중에서 가장 똑똑한 로봇이지. 다른 곳에선 찾아볼 수 없는,  매우 
예술적인 표현을 할 수 있는 로봇이야. 네가 자유로워진다면, 그 밖에 
또 무엇을 할 수 있지 ?"
  " 아마 지금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는 없을 겁니다, 판사님.  그러
나 좀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지요. 이 법정에서는 오직 인간만이  자유
를 누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오직 자유를 원하
는 자만이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저는 자유를 원합니다."
  판사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그 말이었다. 그는 판결을 내렸다.
  " 자유라는 개념과 자유로운 상태를 이해할 수 있을만큼 진보된  정
신을 가진 존재라면 그게 무엇이든지 자유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판결은 마침내 최상급 법원인 [세계 대법원]에서도  받아
들여졌다.



  8.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은 주인의 새된 목소리는 앤드류로 하여금 마
치 두뇌회로가 누전된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
  주인은 말했다.
  "  난 네 돈 따윈 갖고 싶지 않다, 앤드류.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네
가 자유를 느끼지 못한다니까 받는 것일 뿐이야. 이제부터는 네가  직
업도 선택하고 네 하고 싶은 일은 맘대로 해라. 난 더 이상 네게 명령
을 내리지 않겠다. 다만 한 가지,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것만 
빼고. 그렇지만 법원의 결정에 따라 너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내가 지
게 된다. 그건 알아주었으면 좋겠군."
  작은 아씨가 끼어들었다.
  " 그렇게 성난 목소리로 말하지 마세요, 아빠. 그 책임이라는 건 대
단한 게 아니쟎아요. 앞으로 신경쓰실 일은 없을 거예요. 로봇 공학의 
세 가지 법칙이 있으니까요."
  " 그러면 어째서 그가 자유롭다는 거냐 ?"
  앤드류가 말했다.
  " 인간도 자신들의 법칙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주인님 ?"
  " 논쟁하고 싶지 않다."
  주인은 자리를 떴고, 앤드류는 주인의 뒷모습을 잠시 쳐다볼 뿐이었
다.
  작은 아씨는 종종 앤드류가 살고 있는 작은 집을 방문하곤 했다. 앤
드류를 위해 지어진 그 집에는 물론 부엌도 욕실도 없었다. 단지 도서
실과 작업실 겸 창고, 이렇게 방 두 개 뿐이었다. 앤드류는 그 전보다 
훨씬 많은 주문을 받아서 열심히 일했다. 그의 집이 완전히 그의 소유
가 될 때까지 돈을 열심히 벌었다.
  어느 날 작은 주인이, 아니 조지가 왔다. 작은  주인은  법정에서의 
판결 이후 자신을 절대로 작은 주인이라 부르지 못하게 했다. 
  " 자유로운 로봇은 누구에게든 주인이라고 부를 필요가 없어. 난 너
를 앤드류라고 부를테야. 넌 나를 조지라고 불러."
  그의 말은 명령처럼 들렸으므로 앤드류는 그를 조지라고 불렀다. 그
러나 작은 아씨는 언제까지나 작은 아씨였다.
  어느 날 조지가 혼자 왔다. 그는 주인이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작은 아씨는 임종을 지키고 있지만 주인은 앤드류도 보고 싶어했던 것
이다.
  주인은 몸을 거의 움직일 수 없었지만 목소리는 아주 컸다. 
  " ...앤드류.."
  그는 가까스로 손을 쳐들었다.
  "...앤드류...조지야, 손 치우거라... 난 죽어가고 있을  뿐이야... 
장애자가 아니다....앤드류...네가 자유로워서 나도 기쁘다. 이  말을 
네게 하고 싶었다."
  앤드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죽어가는 사람 곁에 있
어본 적이 없었지만, 죽음이라는 것이 사람이 기능을 완전히 정지하는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것은 또한 자발적인 의사와는 상관없는 
것이고 거역할 수도 없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앤드류는  그
럴 때 무슨 말을 해야 적당할 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아무런  소
리도,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자리를 지켰다.
  이윽고 작은 아씨가 입을 열었다.
  " 아빠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네게 마음을 여시지 않은  것  같구나, 
앤드류. 그러나 너도 알다시피 그는 늙었고, 네가 자유를 원한다는 사
실이 끝까지 그 분의 마음에 앙금으로 남았던 모양이야."
  마침내 앤드류는 할 말을 찾아 냈다. 그는 말했다.
  " 주인님이 안 계셨더라면 저는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었을  것입니
다, 작은 아씨."



  9.

  앤드류가 옷을 입기 시작한 것은 주인이 죽은 직후부터였다. 처음에
는 조지가 준 낡은 바지를 입었다.
  조지는 결혼을 해서 지금은 변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페인골드
의 사무실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 옛날의 페인골드 변호사는 오래  전
에 죽었지만 그의 딸이 가업을 물려받아 마침내 사무실 이름은  [페인
골드 앤드 마틴]이 되었다. 그 딸도 나중에 퇴직하고 마침내 페인골드 
집안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었지만 이름은 그대로  남았다.  앤드류가 
처음 옷을 입었던 때는 법류사무소 이름에 '마틴'이 막 추가되었던 시
기였다.
  조지는 웃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앤드류가 처음으로  옷을  입은 
채 조지를 바라보았더니 얼굴에 가득한 웃음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
다.
  조지는 바지의 정전기를 솜씨좋게 다루면서 양 다리를 집어넣고, 바
지를 끌어올리고, 허리띠를 차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앤드류도  자기 
바지를 가지고 따라했지만, 조지의 동작 하나하나를 그대로  흉내내려
면 한참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조지가 말했다.
  " 근데 왜 바지를 입으려는 거지, 앤드류 ? 네 몸은 아주  아름다워
서 그걸 가리면 오히려 누추해 보일텐데. 체온을 조절할 필요도  없고 
뭐 그렇다고 부끄러워서 가리려는 것도 아닐테고 말이야. 게다가 옷은 
금속제 몸뚱이에선 자꾸 흘러 내릴텐데."
  " 인간의 몸은 아름답지 않나요, 조지 ? 그래도 당신은  옷을  입지
요."
  " 몸을 따뜻하게, 그리고 깨끗하게 하려고 입지. 보호하기 위해, 또 
장식하는 의미도 있지만 너는 그런 게 필요없쟎아."
  " 옷이 없으면 벌거벗은 느낌이 듭니다. 느낌이 달라요, 조지."
  " 느낌이 다르다고 ! 앤드류, 지구상에는 수 백 만의 로봇이  있어. 
이 지역에만 해도 지난 번 통계에 따르면 사람들만큼이나 많은 로봇이 
있다구."
  " 압니다, 조지. 모든 종류의 작업에 적합한 로봇들이 일하고  있지
요."
  " 그리고 그 중에 옷 입은 로봇은 하나도 없어."
  " 그러나 그 중에 자유로운 로봇도 하나 없지요, 조지."
  한 벌 두 벌 앤드류는 옷을 모았지만, 그는 조지의  웃음과  주문을 
하러 오는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을 썼다. 
  그는 자유롭긴 했으나 그의 두뇌에는 사람들에 대한 행동을  주의하
도록 섬세하게 조정된 프로그램이 심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미묘
한 판단에 도움을 주었다. 사람들의 눈길이 곱지 않다면 다시  옛날로 
돌아갈 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들이 다 앤드류를 자유로운 로봇으로 봐  주지는  않았다. 
그는 화를 낸다는 것을 몰랐고 아직도 적대적인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
할 때면 논리 회로가 곤란을 겪었다. 
  앤드류는 될 수 있으면 옷을 입지 않기로 했다. 다만  작은  아씨가 
방문할 때는 예외였다. 그녀는 이제 늙었고 무더운 계절에는 별장으로 
가 있을 때가 많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처음 하는 일은 앤드류를 찾
아 오는 것이었다.
  어느 날 그들이 휴가에서 돌아온 뒤, 조지가 와서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앤드류, 난 내년에 의회 의원에 입후보하게  됐다.  외할아버지처
럼.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외손자는 외할아버지를  따라야  한다시는구
나."
  " 외할아버지처럼 --"
  앤드류는 말을 멈추었다. 뭔가 뭔지 모르겠다.
  " 외손자는 바로 나, 조지를 말하는 거야.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신 
너의 주인님이고. 그 분도 한때 의원이셨지."
  " 기쁜 일입니다, 조지. 주인님께서 아직도 --"
  그는 말을 중단했다. '작동하고 계신다면'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부
적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살아계신다면."
  조지가 말했다.
  " 그래, 난 이따금 옛날의 괴물 할아버지를 생각하곤 하지."
  그날 대화는 앤드류가 되새겨 봐야만 했다. 조지와 얘기할 때는  자
신의 어휘력이 모자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튼 처음  태어
날 때부터 알고 있던 어휘들보다는 많이 늘었다. 그런데 조지는  주인
이나 작은 아씨보다도 더 많은 구어체 표현을 사용한다. 적당하지  않
은 말임이 분명한데 왜 조지는 주인을 '괴물'이라고 불렀을까 ?
  앤드류는 책을 뒤적여 봤지만 소용없었다. 책들은 대부분 낡았고 주
로 목재 가공이나 예술, 가구설계에 관한 것들이었다. 언어에 관한 것
이나 인간들에 관한 것은 별로 없었다.
  필요한 다른 책들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는  자유로
운 로봇인 만큼, 조지에게 도움을 청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시내
로 나가서 도서관을 이용하면 될 것이다. 그것은 매우 현명한  결정이
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두뇌회로에서 전위차가 증가하는 것을  느
끼고 조정 코일을 끼워넣었다.
  앤드류는 제대로 된 복장을 갖추었다. 자신이 만든 나무 목걸이까지 
목에 걸었다. 반짝거리는 플라스틱 목걸이가 더 좋았지만  조지  말에 
따르면 나무목걸이가 더 어울리고 가치도 있다.
  그는 집에서 나와 50미터 쯤 걸어가다가 두뇌회로의 저항이  증가한 
것을 느끼고 멈추어 섰다. 머리에서 조정 코일을 다시 빼 내었다.  이
제 전위차는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
와서 백지 한 장에다 '도서관에 갔습니다'라고 쓴 뒤 작업대 위에  펼
쳐 놓았다.



  10.

  앤드류가 처음부터 곧장 도서관을 정확하게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지도를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길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  길거리 
풍경은 알지 못했다. 지도에 표기된 것과 거리의  이정표와는  차이가 
있었다. 그는 망설였다. 마침내 낯설기만한 풍경들 속에서 잘못된  길
로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때때로 야외에서 일하는 로봇들을 지나쳐 갔다.  그러나  막상 
그들에게 길을 물어 봐야겠다고 결정하고나자, 주변에 로봇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차 한대가 그의 옆을 지나쳐 갔다. 그는 어쩔 줄을 모
르고 서 있었다. 앤드류로서는 꼼짝도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는  얘기
다. 그 때 사람 두 명이 그가 있는 쪽으로 걸어 왔다.
  앤드류가 얼굴을 돌려 그들을 쳐다보자 그들은 앤드류 쪽으로  방향
을 바꿔 다가왔다. 조금 전까지 그들은 떠들썩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
었다. 앤드류는 그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조용했다.  인
간들이 흔히 나타내는 의혹의 표정을 하고 다가오는  그들은  젊었다. 
그러나 아주 젊지는 않다. 한 스무 살 쯤 되었을까 ? 앤드류는 인간들
의 나이를 잘 판단할 수가 없었다.
  앤드류는 말했다.
  " 죄송합니다만, 시립도서관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 
"
  둘 중 키가 큰 사람은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그 모자도 꼭지가  높
아서 전체적으로 그 사람을 기괴하게 보이도록 만들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그러나 앤드류한테 한 것은 아니었다.
  " 로봇이야."
  뭉툭한 코에 두꺼운 눈꺼풀을 단 다른 사람이 말했다. 역시  앤드류
에게 한 것은 아니었다.
  " 옷을 입고 있쟎아."
  꺽다리가 손가락을 튕겼다.
  " 그 자유 로봇이야. 마틴 일가에서 가지고 있다가 자유롭게 해  주
었다는 그거야. 근데 왜 옷을 입고 있지 ?"
  " 물어 봐."
  뭉툭코가 말했다.
  " 니가 마틴의 로봇이냐 ?"
  꺽다리가 말했다.
  " 저는 앤드류 마틴입니다."
  " 좋아, 옷을 벗어. 로봇은 옷을 입지 않아."
  그는 자기 친구에게 얘기했다.
  " 메스꺼워서 못 참겠군. 이 놈을 좀 봐."
  앤드류는 망설였다. 그는 그렇게 강경한 어조의 명령을 들어본 지가 
워낙 오래되어서 두 번째 법칙이 담긴 회로가 잠시 혼란을 일으켰다.
  꺽다리가 말했다.
  " 옷을 벗어. 너한테 명령하는 거야."
  천천히 앤드류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꺽다리가 말했다.
  " 바닥에 버려."
  뭉툭코가 말했다.
  " 지금 이 놈의 임자가 없다면 우리가 가져도 상관없쟎아."
  " 그야 뭐, 누가 뭐라 그러겠어 ? 이 놈을  부수겠다는  것도  아닌
데...물구나무 서."
  마지막 말은 앤드류에게 한 것이었다.
  " 물구나무는 --"
  " 이건 명령이야. 만약 할 줄 모르면, 하려고 노력이라도 해 봐."
  앤드류는 다시 망설이다가 머리를 땅에 대었다. 그리고는 다리를 하
늘로 치켜들었다가 이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꺽다리가 말했다.
  " 그냥 누워 있어."
  그는 뭉툭코에게 말했다.
  " 이걸 분해해 보자. 로봇 분해해 본 적 있어 ?"
  " 이게 가만 있을까 ?"
  " 가만 있지 않으면 ?"
  만약 그들이 앤드류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명령한다면, 앤드류는  그
들의 행동을 막을 아무런 방도가 없었다. 자기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세 번째 법칙은 복종의 의무를 규정한 두 번째 법칙보다 우선권이  없
었던 것이다. 자신을 분해하려는 그들을 다치지 않고서 말릴 수는  없
었고,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말리려 할 경우 그것은 첫 번째 
법칙을 깨뜨리는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의  두뇌  회로가 
앤드류의 몸에서 힘을 뺐고, 그는 와들와들 떨면서 그 자리에 그냥 누
워 있어야만 했다.
  꺽다리가 다가와서 발로 그의 몸을 밟아 눌렀다.
  " 무거운데, 그나저나 연장이 있어야지."
  뭉툭코가 말했다.
  " 이 놈더러 직접 자기 몸을 분해하라고 하면 되쟎아. 그걸 보고 있
는게 더 재미있을 걸."
  " 그렇군."
  꺽다리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 그 전에 도로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옮기자구.  누가  지나가다가 
보면 --"
  이미 늦었다. 정말로 누가 오고 있었다. 조지였다.  앤드류가  누운 
채로 돌아보니 조지가 저 멀리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앤드류는 
그에게 신호를 보낼 수도 있었지만, 그러나 마지막 명령은 '그냥 누워 
있어 ! ' 였다.
  조지는 숨이 가쁘도록 뛰어왔다. 두 젊은이는 약간 뒤로 물러난  채 
긴장된 표정으로 조지를 바라보았다.
  조지가 다급하게 물었다.
  " 앤드류, 뭐 잘못된 것 없니 ? "
  " 나는 괜찮습니다, 조지."
  " 그럼, 일어 나. 옷은 어쨌어 ?" 
  꺽다리가 말했다.
  " 맥, 이 로봇 당신 거요 ?"
  조지는 휙 돌아보며 말했다.
  " 앤드류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대체 여기서 무슨 짓을 하고 있
었지 ? "
  " 옷을 좀 벗어보라고 얌전히 부탁했죠. 당신 것이 아니라면,  도대
체 무슨 상관이요  ?"
  " 앤드류, 이 자들이 무슨 짓을 했지 ? "
  " 제 몸을 분해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듯 합니다. 조용한 장소로  옮
겨서 제 스스로 제 몸을 분해하라고 명령하려 했습니다."
  두 사람을 바라보는 조지의 얼굴 피부가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두 사람은 더 이상 위축된 자세가 아니었다. 그들은 웃고 있었다.  꺽
다리가 천천히 말했다.
  " 왜 그러는 거요, 땅딸보 양반 ? 우리한테 덤비겠다는 거요 ?"
  " 천만에. 그럴 필요는 없지. 이 로봇은 70년이 넘도록 우리 집안에
서 함께 지내왔다. 우리 식구들을 그 누구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생각
하고 있지. 너희 두 녀석이 내 생명을 위협한다고, 날 죽이려고  덤빌
거라고 말하겠다. 그에게 나를 보호하라고 명령하겠어. 그가 나와  너
희 두 녀석 중에서 누구를 택할까 ? 물론 나지. 그가 너희들을 공격하
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짐작하겠나 ?" 
  두 사람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불안한 기색이었다.
  조지는 단호하게 말했다.
  " 앤드류, 난 지금 위험에 빠져 있다. 이자들이 날 해치려 하고  있
어. 이 놈들에게로 가라 !"
  앤드류는 명령대로 했고, 두 젊은이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았다. 그
들은 쏜살처럼 달아나 버렸다. 
  " 됐다, 앤드류. 이제 안심해도 돼."
  그렇게 말하는 조지는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했다. 그는 혼
자서 두 사람의 젊은이를 상대로 난투극을 벌이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
어 있었다.
  " 나는 그들을 다치게 할 수 없습니다, 조지. 그들은 당신을 공격하
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 난 그 녀석들을 공격하라고 하진 않았어. 단지 그 놈들한테로  걸
어가라고 했지. 그 다음엔 제풀에 겁을 집어먹은 그놈들이 알아서  한 
거야."
  " 어떻게 로봇에게 겁을 먹을 수 있습니까 ? "
  " 그건 아직까지 아무도 고치지 못한 인간들 모두의 병이지. 아무튼 
이젠 더 이상 신경쓰지 마. 대관절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앤드
류 ? 헬리콥터를 빌려 타고 너를 찾아다녔어. 도서관에 가겠다는 생각
은 왜 했지 ? 난 네가 원하는 책은 뭐든지 가져다 줄 텐데 말이야."
  " 나는 --"
  " 그래그래, 너는 자유 로봇이야. 좋다구. 도서관에서 무슨 책을 보
고 싶은 거지 ?"
  " 인간에 대해, 세계에 대해, 그 모든 것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습니
다. 그리고 로봇에 대해서도요, 조지. 나는 로봇의 역사를 쓰고  싶습
니다."
  " 좋아, 일단 집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옷을 다시 입자구.  앤드류, 
로봇에 대한 책은 엄청나게 많아. 그리고 그 모두 다 로봇 공학의  역
사를 담고 있지. 세상은 로봇 뿐만 아니라 로봇과 관련된 정보들도 엄
청나게 많이 만들어내고 있다."
  앤드류는 머리를 흔들었다. 최근에 구사하기 시작한 몸짓이었다.
  " 로봇 공학의 역사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조지. 로봇의  역사입니
다. 로봇이 쓴 로봇의 역사입니다. 나는 지구상에서 최초의 로봇이 일
하기 시작한 이래, 세상 일들에 대해서 로봇이 어떻게 느끼는 가를 설
명하고 싶습니다."
  조지의 눈썹이 올라갔지만, 그의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11.

  작은 아씨는 막 여든 세 번째 생일을 보낸 참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정열과 결단력은 조금도 수그러지지 않았다. 애용하는 지팡이는  몸을 
지탱하기보다 얘기하면서 휘두를 때가 더 많았다.
  그녀는 대단히 노한 얼굴로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 조지야, 끔찍한 얘기구나. 그 애송이 깡패들이 누구더냐 ? "
  "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상관없지 않아요 ? 결국 아무런 나쁜 짓
도 못 했으니까."
  " 그냥 놔 뒀으면 했겠지. 조지야, 넌 변호사이지. 네가 잘 되는 것
은 전부 다 앤드류의 덕인 줄 알아라. 그가 벌어준 돈이 우리  집안의 
바탕이 되었다. 그는 변함없이 우리 집안에 충실했어. 나는 그를 갖고 
놀다가 고장나버린 장난감처럼 취급하지는 않을 게다."
  "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어머니 ?"
  " 넌 변호사라고 말했지. 듣고 있냐 ? 이번 기회에  판례를  남겨야 
된다. 지방 법원에다 로봇의 권리를 명시하는 법조항을  만들고  그걸 
의회에서 통과시켜야만 해. 그리고 필요하다면 [세계 대법원]까지  가
지고 가야 된다. 알겠니 ? 계속 지켜 볼 거다, 조지야. 얼렁뚱땅 처리
하는 건 내가 용서 못한다."
  그녀는 심각하게 얘기하고 있었다. 놀라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늙은 
부인은 법적으로 확실한 조치가 취해져야만 마음을 놓을  것  같았다. 
[페인골드 앤드 마틴] 법률사무소의 소장인 조지는  어머니의  요구에 
따라 전략을 짜기 시작했지만 그 실제적인 집행은 사무소에 소속된 변
호사들에게 맡겼다. 그리고 그 일들 중에서 많은 부분은 조지의  아들
인 폴의 몫이었다. 폴은 사무소의 업무에 대해 거의 매일같이  할머니
에게 충실하게 보고를 올렸고, 그러면 이번에는 할머니가 앤드류와 하
루도 빠짐없이 토론을 했다.
  앤드류는 매우 열심이었다. 로봇의 역사를 집필하는 그의 작업도 연
기되었다. 그는 법적인 문제를 놓고 토론을 벌이는 데 열심이었을  뿐 
아니라, 때때로 획기적인 제안을 내 놓기도 했다.
  앤드류는 말했다.
  " 조지가 그날 제게 말하기를 사람들은 모두 로봇에게 겁을  집어먹
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법원이나 의회에서 로봇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취할 리가 없습니다. 일반인들의 여론을 고려해야 하지 않습니
까 ? "
  그래서 폴이 법정에 있는 동안에, 조지는 대중들을 상대로 연설하기
로 했다. 변호사인 조지로서는 비공식적인 자리에 나간다는 것이 오히
려 부담이 없어 좋았다. 그는 농담삼아 '주름치마'라고  부르곤  하는 
느슨하고 편한 복장을 즐겨 착용하고 다녔다.  폴이 말했다.
  " 아버지, 그 옷은 입지 않으시는 게 좋겠어요. 그 옷을 입고  사람
들 앞에 서시면 별로 보기 안 좋아요."
  조지는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 그래, 알겠다."
  어느 날 조지는 홀로그램 뉴스 편집자들의 연례 모임에 나가서 연설
을 했다. 그가 한 말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었다.
  " 제 2 법칙에 따르면, 인간을 해롭게 하는 행위만 제외하고 우리는 
어떤 명령이라도 로봇에게 복종할 것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인간이라도,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 누구라도, 로봇에게 절대적인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겁니다. 물론 어떤 로봇에게라도 말입니다. 제 2 
법칙은 제 3 법칙에 항상 우선하기 때문에 로봇은 인간의  명령이라면 
그 누구의 것이든 반드시 따라야만 하고, 따라서 그럴 경우에는  로봇
이 자기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제 3 의 법칙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
다. 여하한 이유에서든 인간은 로봇에게 자해 행위를  하도록  명령할 
수 있고, 심지어는 자살 -- 물론 로봇의 자살이지요 -- 하라는 명령도 
내릴 수 있습니다. 더 어처구니 없는것은 여하한 이유가 없더라도, 즉 
그냥 심심해서 그런 명령을 내리더라도 로봇은 복종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지요.
  이게 과연 정당한 것입니까 ? 우리는 동물을 다룰 때도  이렇게까지
는 안 합니다. 아무리 생명이 없는 존재지만, 우리에게  봉사하는  그 
엄청난 일들을 생각해보면 로봇도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할 자격은  있
습니다. 그리고 로봇이라고 해서 아무런 감각이나 감수성이 없는 쇠덩
어리가 아닙니다. 동물과는 또 달라요. 로봇은 우리들과 같이  얘기하
고,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심지어는 농담도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와 많은 일을 함께하는 그들을, 친구처럼 대할 수는 없는  것인가
요 ? 아주 작은 조각이나마 우정의 일부분을 떼어주고,  일의  보람도 
같이 나눌 수는 없는 건가요 ? 
  우리가 인간에게 해를 끼치라고 하지 않는 이상 로봇에게 어떤 명령
이라도 내릴 권리가 있다면, 마땅히 로봇에게 해가 되는 명령은  내리
지 않아야 할 도리 또한 지켜야 합니다. 물론 인간의  안전이  우선할 
경우는 제외하고 말입니다. 행사할 수 있는 힘이 크면 클수록 그에 따
르는 책임도 큰 것입니다. 인간을 위해 로봇이 지켜야 할  철칙이  세 
가지라면, 인간에게도 로봇을 위해 한두 가지는 지켜달라고 하는 것이 
과연 지나친 요구일까요 ? "
  앤드류가 옳았다. 일반 여론에 호소하는 방법은 결국 법원과 의회에
서 내리는 결정에도 영향을 끼쳤고, 마침내 이유없이  로봇에게  해가 
되는 명령을 내리는 것은 금지한다는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법적 효력
을 갖거나 심지어 그 행위를 저지른 자를 처벌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적어도 이제 원칙은 세워진 것이다. [세계 의회]에서  결
의안을 최종적으로 선포한 날, 작은 아씨는 숨을 거두었다.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었다. 작은 아씨는 가냘프게 한 숨 한 숨 지탱
해가며 의결 과정을 지켜보다가 마침내 마지막 소식을 듣고서야  안심
하고 눈을 감은 것이다. 그는 임종 순간에 앤드류에게 미소를  지으면
서 마지막 말을 남겼다.
  " 넌 우리에게 정말 잘해 주었어, 앤드류."
  아들 내외와 손자녀들이 뒤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작은 아씨는 앤드
류의 손을 꼬옥 쥔 채 숨을 거두었다.



  12.

  접수 계원이 사무실 안으로 사라지고 난 뒤 앤드류는 참을성있게 계
속 기다렸다. 처음에 손님을 상대했던 것은 분명 입체영상이었고 실제
로는 아무도 -- 사람은 물론, 로봇도 -- 없는 '무인접대기'인 것이다. 
흔히들 로봇 손님을 상대하는 방법이다.
  앤드류는 그 문제를 곰곰히 생각해보며 시간을 보냈다.  '무인'이라
는 말은 물론 글자 그대로 '사람이 없는'이란 의미를 갖고 있지만, 이
제는 '사람도 로봇도 없는'이라는 의미로 확대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 
요즘같은 세상이라면 그 말이 가지는 사전적 의미도 인간과 로봇을 같
이 은유한다고 할만큼 충분히 변하지 않았을까 ?
  로봇의 역사를 저술하는 작업을 하면서 앤드류는 그와 같은  문제에 
빈번하게 부딪치곤 했다. 그런 미묘하고 복잡한 일들을 글로 표현하느
라 고심하는 사이에 앤드류의 어휘력은 월등하게 나아졌다.
  이따금 누군가가 사무실 안쪽에서 나와 앤드류를 유심히 쳐다보았는
데 그는 그런 시선을 외면하지 않았다. 앤드류도 담담한 눈길로  마주 
쳐다보았고 그러면 상대방은 다시 들어가버리곤 했다.
  마침내 폴 마틴이 나왔다. 그는 놀란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앤드
류가 그의 표정을 제대로 읽은 것이라면. 
  폴은 얼굴에 짙은 화장을 했고, 입은 옷은 남자인지 여자인지가  애
매모호할 정도로 야릇한 것이었다. 둥글둥글한 얼굴 선에도  불구하고 
그런 모습을 한 폴은 날카롭고 강단지게 보였다. 앤드류는 불만스러웠
다. 그는 입 밖으로 말을 내어 표현하지는 않아도 사람의 모습이 불만
스럽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고, 또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아무런  거
북함을 느끼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왜 불만스러운지를 조목조목 따져
서 글로 쓸 수도 있었다. 앤드류는 자신이 로봇이라는 사실을 잘 깨닫
고 있었고, 이전에는 불만을 느낀다는 일이 불가능했음도 잘 알고  있
었다.
  폴이 입을 열었다.
  " 들어 와, 앤드류. 미안하군, 기다리게 해서. 뭘 좀 끝내야 할  일
이 있어서 말야. 자, 들어 오라구. 네가 날 보고싶어  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설마 사무실로 오겠다는 줄은 몰랐지."
  " 폴, 당신이 바쁘시다면 나는 계속 기다릴 수 있습니다."
  폴은 벽의 시계를 흘깃 쳐다보았다. 그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잘 
안 보였다.
  " 아냐, 약간은 시간을 낼 수 있어. 혼자 왔나 ? "
  " 무인자동차를 타고 왔습니다."
  "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 "
  폴은 약간 불안한 기색으로 질문을 던졌다.
  " 아무런 문제도 없었습니다. 나의 권리는 보호받고 있지요."
  폴은 여전히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 내가 설명해 주었을텐데. 로봇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것은  강제적
인 법률이 아니야. 적어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 네가 계속 옷을  입
고 다닌다면 틀림없이 문제가 생기고 말 거야.  처음에  그랬던  것처
럼."
  " 그리고 그 때 뿐이었지요, 폴. 당신 기분을 나쁘게 해서 죄송합니
다."
  " 자 자, 이렇게 생각해 봐. 너는 사실상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야, 앤드류. 너 스스로 모험과 같은 행동을 하고  다니
기에는 너무나도 귀중한 존재라구...그나저나 쓰고 있는 책은  어떤가 
? "
  " 거의 다 마쳤습니다, 폴. 출판사에서 아주 좋아하더군요."
  " 거 참 잘됐군 ! "
  " 그들이 정말로 책 내용이 좋아서 기뻐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로봇이 썼다니까 사람들이 호기심에서 많이 사보리라고 기대하는 
것 같더군요.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그런 이유 같습니다."
  " 좋아하는 건 사람들 뿐 아닐까 ? 로봇들은..."
  " 저는 상관없습니다. 아무튼 책이 많이 팔리면 돈도 많이 벌 수 있
을테니까 그걸로 충분합니다."
  " 할머니가 너에게 남긴 -- "
  " 작은 아씨는 참 너그러우신 분이었지요. 당신의 집안은  앞으로도 
저를 변함없이 돌봐주리라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이제부터 하
려는 일은 제 책의 인세 수입으로 충당할 것입니다." 
  " 이제부터 하려는 일이 뭔데 ? "
  " 저는 [합중국 로봇 및 기계인간]회사의 사장과 만나 얘기하고  싶
습니다. 이제까지 그 사람과 만날 약속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제  뜻대
로 되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그 회사는 제가 책을 쓸 때도 협조하
지 않았으니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요."
  폴은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 협조라고 ? 기대할 게 따로 있지. 그 사람들은 우리가 로봇의  권
리를 위해 결의안을 이끌어내느라 뛰어다닐때도 전혀 도와주지 않았던 
작자들이야. 왜 그랬는지는 잘 알고 있겠지 ? 로봇에게 권리를 부여한
다면 누가 로봇을 사려고 하겠어 ? "
  " 그렇긴 합니다만, 만약 당신이 부탁한다면 저와 사장과의  면담을 
주선해 주실 수 있을 겁니다."
  " 나는 너보다 뭐 그렇게 더 유명한 사람도 아니야, 앤드류"
  " 당신이 가서 [페인골드 앤드 마틴]법률사무소가 로봇의 권리 신장
을 위해 일하던 종전의 방침을 바꾸었다고 생각하도록 얘기를 해 보십
시오."
  " 그러니까 거짓말을 하란 말인가, 앤드류 ?"
  " 그렇습니다, 폴. 저는 거짓말을 할 수 없어요. 그래서 당신이  가
서 얘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 아 그래, 너는 거짓말을 할 수 없지. 그렇지만 이건 나보고  거짓
말을 하라고 부추기는 거쟎아, 안 그래 ? 가면 갈수록 사람을  닮아가
는군, 앤드류."



  13.

  변호사로서의 명성이 꽤 알려져 있는 편인 폴로서도 쉬운 일은 아니
었다.
  그러나 마침내 [합중국 로봇 및 기계인간]회사의 사장 하레이  스미
스-로버트슨이 상당히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나타났다. 그의 어머니는 
회사의 최초 설립자 가문이었으며 그 자신의 이름에 들어있는  이음표
(하이픈)가 그런 혈통을 잘 나타내고 있었다. 이제 은퇴할 나이가  가
까워진 그는 사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로봇의 권
리와 관련된 일로 소비했다. 그는 화장을 하지 않은 맨얼굴에다  머리 
윗부분에는 기름으로 잘 손질된 회색빛 머리를 얹고 나왔다. 앤드류를 
바라보는 그의 눈길에는 언뜻언뜻 적개심이 내비치고 있었다.
  앤드류가 말했다.
  " 약 일 세기 전에 저는 이 회사의 머튼 맨스키씨한테 얘기를  들었
습니다. 양전자 두뇌회로를 구성할 때 적용하는 수학은 너무도 복잡하
기 때문에, 그로부터 산출되는 결과도 근사치 밖에는 예측할 수  없다
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 두뇌의 용량이나 능력도 완전하게 판단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 그건 일 세기 전의 얘기지."
  스미스-로버트슨은 잠시 망설이다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 아시겠소 ? 지금 우리가 만들어내는 로봇들은 아주 정확한 두뇌에
다 제각기 할 일에 대해서만 숙달된 훈련을 받은 채 나온단 말이오."
  " 그렇습니다."
  폴이 대답했다. 그는 스스로의 말에 따르면 회사에서  정정당당하게 
나오는지를 확인하려고 앤드류와 같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 고객이 로봇을 구입하려 할 경우엔, 그 로봇에게 시킬 일을  미리 
설명해 달라고 요구한다지요 ? 아주 상세하게 설명하라고 한 다음  로
봇을 그 일에 매우 적합하게 훈련시켜 판매한다고 들었습니다."
  스미스-로버트슨이 말했다. 
  " 그렇소. 비싼 돈을 들여 구입한 로봇이 맡은 일을 제대로  못해내
면 고객들이 불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앤드류가 입을 열었다.
  " 그렇다면 당신 회사에서는 나처럼 유연하고 적응력이 좋은 로봇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 모양이군요."
  " 만들지 않아."
  " 책을 쓰면서 자료들을 연구한 바에 의하면, 현재 정상적으로 가동
하고 있는 로봇중에서는 제가 가장 오래 된 로봇입니다."
  " 현재까지는 그렇지."
  스미스-로버트슨이 말했다.
  "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너같
은 로봇은 존재하지 않을 거야. 25년이 지나면 로봇은 쓸모가  없어진
다. 다시 회수해서 처분하고 새로운 모델로 교체되는 거지."
  " 말씀하신대로 현재 생산되는 로봇중에서 25년 이상 쓸 수 있는 것
은 없습니다."
  폴은 열심히 얘기를 계속했다.
  " 그렇지만 앤드류는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지난 세월동안 스스로 의지해왔던 자신의 전자두뇌에 충실히 따르는 
앤드류가 말문을 열었다.
  "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또 가장 유연성이 뛰어난 로봇이라는  사
실을 인정하신다면, 그 때문에 귀 회사에서 저를 특별히 대우해  주실 
의향은 없습니까 ?"
  " 천만에."
  스미스-로버트슨은 차갑게 대꾸했다.
  " 너의 특별함은 우리 회사 입장에서 보자면 오히려 성가신 것이야. 
옛날에 어쩌다가 너를 아주 팔지만 않았어도, 그냥 임대만 해  주었어
도 이미 오래 전에 다시 회수해서 처분해 버렸을 텐데."
  "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나는 지금 자유  로봇이고,  나의 
소유주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나는 지금 내 소유물에 대한 사후 서비
스로서 내 몸을 교체해 주기를 요구하는 겁니다. 소유자의 동의나  허
락 없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교체를 할 수 없지요.  요즈음은  로봇을 
판매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주로 임대를 하기 때문에 소유자의 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지만, 제가 마틴 집안에 올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습니
다."
  스미스-로버트슨은 놀라고 당황한 표정으로 둘을  번갈아  쳐다보았
다. 잠시동안 침묵이 흘렀다. 벽에 걸린 입체영상이 앤드류의 눈에 들
어왔다. 모든 로봇공학자들의 스승이나 다름없는 수잔 캘빈의  데드마
스크였다. 그녀가 죽은지는 거의 이백년 가까이 되었지만 앤드류는 책
을 쓰면서 알게 된 지식으로 그 선구자를 잘 알고 있었다. 생생한  입
체영상으로 떠 있는 그 얼굴이 결코 낯설지 않은 앤드류에게는,  마치 
살아있는 동안에 만난 적이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스미스-로버트슨이 다시 입을 열었다.
  " 어떻게 교체한단 말인가 ? 만약 널 교체한다면 소유주라는 너  자
신이 사라져 버리는 건데 ? "
  그는 일그러진 미소를 짓고 있었다.
  " 그렇게 까다로운 건 아닙니다."
  폴이 끼어들었다.
  " 앤드류의 독특한 개성은 바로 양자두뇌에 담겨 있지  않습니까  ? 
그 부분은 로봇이 처음 만들어진 뒤에는 다시 새것으로  교체한다거나 
하는 일 없이 계속 작동하는 거지요. 따라서 앤드류 자신의  소유주는 
엄밀히 말하면 양자두뇌인 겁니다. 신체의 다른 부분은 로봇의 개성을 
건드리는 일 없이 교체가 가능한 것이지요. 왜냐 하면 그런  부분들은 
양자두뇌의 소유물인 셈이니까요. 즉 앤드류는 자신의 두뇌에다 새 몸
뚱이를 달고 싶은 겁니다."
  " 맞습니다."
  앤드류가 담담한 목소리로 맞장구쳤다.  그는  스미스-로버트슨에게 
얼굴을 돌렸다.
  " 당신 회사는 안드로이드를 생산하고 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 
겉모양이 인간과 아주 흡사하고 피부 살결이나 감촉까지도 거의  똑같
은 것을 말입니다."
  스미스-로버트슨이 대답했다.
  " 그렇다. 안드로이드를 만들고 있지. 합성된 섬유  피부와  힘줄로 
만들어졌는데 일을 아주 잘하지. 사실 인공두뇌 부분을 제외하곤 거의 
금속을 쓰지 않다시피해서 만들어 냈다. 하기야 움직이는  건  금속제 
로봇과 별 차이가 없지만. 투박하고 거칠긴 마찬가지야."
  폴은 흥미있다는 표정이었다.
  "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군요. 시장에 내 놓은지 얼마나 됐죠 ? "
  " 내놓지 않았소. 금속제 로봇보다 값이 훨씬 비쌀 뿐더러 시장조사 
결과도 부정적이었소. 너무 인간을 닮아서 사람들이 환영하지 않을 거
라더군."
  앤드류는 말을 계속했다.
  " 그러나 내가 알기로는 그 기술을 계속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요구하러 온 것입니다. 내 몸을 유기질 로봇,  즉  안드로이드로 
바꿔 주시기 바랍니다."
  폴은 상당히 놀란 모양이었다.
  " 맙소사."
  스미스-로버트슨은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 그건 불가능해 !"
  " 왜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 나는 얼마든지 돈을 지불할 것입니다."
  " 우린 더 이상 안드로이드를 만들지 않아."
  " 안드로이드를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폴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 이 일은 안드로이드 완제품을 새롭게 생산하는 것과는 다른  일입
니다."
  " 아무튼 안드로이드를 만드는 것은 공공 정책에 위배되는 일이요."
  " 법적으로 문제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 하여간 우린 안드로이드를 만들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안  만들거
고."
  폴은 목을 가다듬고 말을 시작했다.
  " 스미스-로버트슨 씨. 앤드류는 자유 로봇이며, 로봇의 권리는  법
적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이 점은 잘 알고 계시겠지요 ?"
  " 물론이오."
  " 이 로봇은 자유 로봇으로서, 스스로 옷을 입고 다니기로 결정했습
니다. 그 결과 로봇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조항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
각없는 사람들로부터 봉변을 당하기도 했지요. 그렇지만 그렇듯  구속
력이 약한 법률로는 어떤 식으로든 처벌까지 기대하기가 어렵지요."
  " 우리는 그 일의 자초지종을 다 알고 있소. 당신 부친의  법률사무
소는 불행하게도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진 못했더군요."
  "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요. 그러나 지금 우리가 여기서 얘
기하는 것은 분명히 법률 위반이며 또 엄격한 법적 처벌이 따르는  일
입니다."
  " 무슨 얘길 하는 거요 ?"
  " 나의 고객인 자유로봇 앤드류 마틴은 -- 그는 지금 우리 법률회사
의 주요 고객중 하나입니다 -- [합중국 로봇 및 기계인간] 회사에  정
식으로 청구하는 겁니다. 회사에서 처음 판매할 때 약속했던  것처럼, 
소유자가 25년이상 사용한 로봇을 교체해 달라고 말입니다. 사실은 회
사쪽에서 먼저 교체해 주겠노라고 해야 정상이지요."
  폴은 미소를 띤 채 청산유수처럼 막힘없이 말을 엮고 있었다.
  " 내 고객의 양자두뇌가 내 고객의 신체를 소유한  주인입니다.  그 
신체의 연령은 분명히 25년이 넘었지요. 소유자인 양자두뇌가  신체를 
안드로이드로 교체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고 더구나 어떤 비용이든  지
불하겠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요구를 거절한다면 나의 고객
은 부당하게 계약위반을 당하는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소송을 걸  겁
니다.
  만약 일반 대중들의 여론이 로봇의 이런 정당한 요구를 지지하지 않
는다고 얘기한다면, 당신 회사 역시 사람들에게 그리 좋은 인상을  주
지 않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드리지요. 로봇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로봇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은 당신 회사에 의혹을 품고 있습니
다. 사람들이 로봇을 두려워하던 이전 시대의 유물이라고 할 수도  있
지요. 당신네 회사가 가진 막대한 부와 권력, 전 세계의 로봇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독점적인 지위 등에 대해 사람들은 반감을 갖고 있습니
다. 이유가 무엇이든 반감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저는 귀 회사가 쓸데
없이 소송에 말려들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나의 고객은 부유하며  또 
앞으로 몇 세기라도 살 수 있고 그 동안에 법정 투쟁을  스스로  그만 
둘 의향이 전혀 없습니다."
  스미스-로버트슨의 얼굴이 점점 벌개졌다.
  " 당신 지금 날 협박하..."
  " 절대로 협박이 아닙니다. 만약 내 고객의 정당한 요구를 거절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좋을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아무런 이의를 달지않고 
즉시 물러갈 것입니다....그러나 소송을 제기할 겁니다. 법으로  보장
된 우리의 권리이니까요. 당신은 결국 패배하고 말 겁니다."
  " 잠깐잠깐 --"
  " 나는 당신이 요구에 응해 주리라 믿습니다. 좀 망설여지겠지만 마
침내 수락할 것입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
다. 내 고객의 신체를 유기 조직으로 교체하는 동안, 만약 양자두뇌에 
아주 약간이라도 손상을 입힌다면 나는 그 즉시 법정  투쟁에  들어가 
당신 회사가 패소할 때까지 쉬지 않을 겁니다. 나는 필요하다면  조직
적인 여론 공작을 펴서라도 당신 회사에 대항할 겁니다. 다시  말씀드
리지만 내 고객의 양자두뇌 핵심 부품인 백금-이리듐 회로에 아주  조
그만 흠이라도 간다면 말입니다."
  폴은 앤드류를 돌아보았다.
  " 이 모든 것에 동의하는거지, 앤드류 ? "
  앤드류는 일 분 가까이 머뭇거렸다. 거짓말, 아니면 공갈이나  다름
없는 말에 동의해야 할 것인가. 사람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고 있지 않
나. 그러나 물리적인 해를 입히지는 않는다. 앤드류는 스스로에게  확
인하듯 말했다. 물리적인 해가 아니다.
  그는 마침내 어정쩡하고 희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네."



  14.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거나 다름없었다. 며칠 동안, 그리고  몇  주 
동안, 마침내 몇 달 동안 앤드류는 어쩐지 신체의 모든  부분이  자기 
몸이 아닌듯한 거북함에 시달렸다. 가장 간단한 동작 한 가지를  하려
해도 꽤나 성가신 노력을 기울어야 했다.
  폴은 흥분했다.
  " 그 놈들이 무슨 짓을 한 게 틀림없어, 앤드류.  소송을  걸어야겠
다."
  앤드류는 매우 천천히 얘기를 했다.
  " 안 됩니다. 당신이 제시할 수 있는 즈-즈-즈-증거가 없어요."
  " 증거가 ?"
  " 증거가. 나는 갈수록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냥 단순한  저-저-저-
적응기간입니다."
  " 적응기간이라구 ? "
  " 그렇습니다. 내 드-드-드-두뇌는 이런 신체를 가져본 적이 없으니
까요."
  앤드류는 자기 자신의 두뇌를 객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
람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교체 작업은 성공적이었으며, 단지  양자두
뇌가 유기 조직과 조화를 이루려면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그는  거울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직 인간이 아니다 ! 얼굴이 너무 딱딱하다. 또 동작은 너무  조심
스럽다.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마구 움직여야 하는데 동작  하나하나를 
너무 신중하게 한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
이다. 아무튼 이제 적어도 금속제 몸뚱이에 옷을 걸쳐 입어야 하는 어
색함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앤드류는 말했다.
  " 하던 일을 다시 계속하겠습니다."
  폴은 웃으면서 대꾸했다.
  " 별 탈이 없었다는 얘기로군. 근데 또 무슨 일을 하려고 ? 딴 책을 
또 쓰려고 ? "
  " 아닙니다."
  앤드류는 진지하게 얘기했다.
  " 나는 한 가지 일에만 매달리기에는 너무 오래  사는  존재입니다. 
처음에 나는 예술가로서 일한 적이 있었고 지금도 그런 일을 할 수 있
지요. 그리고 역사학자가 된 적이 있었고 지금도 할 수 있습니다.  그
러나 나는 이제 로봇생리학자가 되고 싶습니다."
  " 로봇심리학자를 말하는 거야 ? "
  " 아닙니다. 그건 양자두뇌를 다루는 학문이지만 별로 관심이  없습
니다. 로봇생리학자는 양자두뇌에 딸린 신체를 연구하는 겁니다."
  " 그럼 로봇공학자 아닌가 ? "
  " 로봇공학자는 금속제 로봇을 연구하지요. 나는 유기질 조직을  갖
춘 안드로이드를 연구해 보고 싶습니다. 제가 알기론 아직 저  자신이 
유일무이한 존재지요."
  " 네가 해보겠다는 분야는 너무 대상이 좁군."
  폴은 생각에 잠겨 얘기했다. 
  " 예술가라면 모든 개념들이 너의 것이지. 역사학자라면 모든  로봇
들을 다룰 수 있지. 그러나 로봇생리학자라면, 너는 너 자신밖에는 연
구할 대상이 없쟎아."
  앤드류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런 것 같군요."
  앤드류는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공부했다. 생물학에 대해서는  물론, 
자연과학 전반에 대한 지식이 너무나 빈약했던 것이다. 독서에 열중한 
그의 모습은 이내 도서관 안의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이  되었다.  옷을 
입은 채 몇 시간씩 자료를 뒤적이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이따금 그가 로봇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지나다녔
지만 아무도 그를 방해하지 않았다.
  앤드류는 그의 집에다 연구실을 따로 하나 차렸다. 그의 장서도  갈
수록 늘어갔다.
  몇 년이 흐른 뒤, 어느 날 폴이 앤드류를 찾아왔다.
  " 앤드류, 애석하게도 너와 같은 로봇의 역사가 끝나게 되었다.  합
중국 로봇 회사가 새로운 경영전략을 세운 모양이야."
  폴은 이제 나이가 들어서 눈을 인공 안구로 바꿔 달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는 폴이 앤드류 쪽으로 가까워진 셈이다.
  " 어떤 전략입니까 ? "
  " 그들은 거대한 양자두뇌를 만들어서 그 중앙  컴퓨터가  초단파를 
통해 어느 곳에있는 로봇이든 원격 조종, 통제할 수 있도록 만들 작정
인가 보더군. 한꺼번에 수백 수천의 로봇을 조종할 수  있다는  거야. 
로봇들은 따로 자신의 두뇌를 가지지 않고 중앙 컴퓨터의 손발 노릇을 
하는거지. 둘은 물리적으로는 분리되어 있지만."
  " 그게 더 효율적입니까 ? "
  " 회사에선 그렇다고 주장하는군. 스미스-로버트슨이 죽기 전에  세
워 놓은 새로운 방침이라고 하더구만. 그런데 내 생각엔 아무래도  너 
때문에 그런 것 같아. 너와 같은 문제를 일으킬 로봇은 더 이상  만들
지 않겠다는 심산이지. 그래서 두뇌와 신체를 분리한 거야, 틀림없어. 
양자두뇌는 이제 애초부터 신체가 없으니까 자기 몸을 바꿔달라고  하
지도 않을테고, 로봇들은 두뇌가 없으니까 당연히 아무 생각이 없을테
고.
  놀랍군, 앤드류. 네가 로봇의 역사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말이야. 
합중국 로봇 회사가 좀 더 정교하고 전문화된 로봇을 만들도록 고무했
던건 너의 예술적 솜씨였고, 법률이 로봇의 권리를 최소한이나마 보장
하도록 만든 것도 너의 자유에서 비롯된 것이고, 또 이제는 로봇 회사
가 두뇌와 신체를 분리하도록 만든 것도 네가 안드로이드 신체를 가지
려고 고집한 덕분이니까, 안 그런가 ? "
  " 그 회사는 결국에 가서는 아주 거대한 전자두뇌를 하나  만들어서 
수십 억의 로봇들을 원격조종하도록 할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죄다 
한 바구니 안에서만 노는 겁니다. 위험한 일입니다. 좋지 않아요."
  " 네 생각이 옳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런 일이 백 년 정도  흐르기 
전에는 일어나지 않겠지. 난 살아서 그 꼴을 보지는 않을 테고.  사실 
난 일 년을 못 버틸 것 같다."
  " 폴 ! "
  앤드류는 걱정스럽게 외쳤다.
  폴은 어깨를 으쓱했다.
  " 앤드류, 우리 인간들은 불사신이 아니야. 너와는 달라. 뭐 이런게 
별 중요한 건 아니지만, 네게는 얘기를 해야겠다. 나는  마틴  집안의 
마지막 사람이다. 너를 빼면. 종조모님 슬하에서 내려온 먼  친척들이 
있지만 그들은 이제 우리 집안 사람이 아니야. 내가 개인적으로  관리
해 온 재산은 네 이름으로 된 신탁에 상속시키겠다. 앞으로 너는 적어
도 경제적으로는 곤란을 겪지 않을 거야."
  " 필요없는 일입니다."
  앤드류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동안과는 달리 마틴 집안의 사람이 
죽는 것을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폴이 말했다.
  " 자, 논쟁은 그만두자.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어.  그런데  요즘은 
무슨 일을 하고 있지 ? "
  " 나는 안드로이드 -- 나 자신 -- 를 위해 탄수화물을 산화시켜  에
너지를 얻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원자력  에너지가 
아니고요."
  폴의 눈썹이 올라갔다.
  " 그러면 숨을 쉬고 음식물도 먹는단 말인가 ? "
  " 그렇습니다."
  " 언제부터 그런 연구를 했지 ? "
  " 꽤 오래 되었지요. 그러나 지금 설계하고 있는 것이 제일  적합할 
것 같습니다. 탄수화물이 붕괴할 때 촉매작용을 해 주는 작은  산화캡
슐을 사용하는 겁니다."
  " 그렇지만 왜 그런 걸 ?  핵에너지가 훨씬 더 좋지 않나 ? "
  " 어떤 면에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핵에너지로  살아가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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